본문 바로가기
여행지 소개

증도가 합주 - 마키 류 집 (눈 류 집) 목차

by introtravel 2025. 3. 27.
반응형
증도가 합주

목은 시고 31권 시 목사견가(目司見歌) 我光(我狂) 김생 절구 느낀 점이 있어 만든다. 불행 난징 윤이 물고기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쪽에있는 선생님이 내 집에 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圃隱추상(李相), 이도예(李陶隱)와 이동천(李遁村)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야마에 걸어 오르고, 송동년의 차마밭을 지나 나와서 부창의 도리이에 이르렀지만, 옆에 사는 조판사가 술을 가져왔기 때문에 조금 취한 상태로 말을 타고 노래해 돌아왔다. 머리를 빗 합주(陜州)의 鈴閣에 불어. 영암사(坖巖寺) 당두(당두)에 불어. 겨울날에 성남 강릉사가 생전복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의에 있는 몇몇 같은 해에 불는. 박정당은 나를 종백이라고 부르지만 문생의 명단회가 열리는 날 내 집을 찾아 초대하는데 병 몸을 이끌고 가서 참석해 밤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에 대서해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가가 시재(시야) 즉사(소사) 곡성부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목 ​​대요사에게 대답한다. 야나기 교사가 온다. 왼쪽 윤(왼윤) 형이 화해하기 전 때 대상풍우라는 말이 있으므로 다시 한번 숫자를 붙인다. 자영 김군弼의 같은 해 시를 보고 나서 차갑다. 바람 소리를 듣고 느낌이 있습니다. 화낭의 당두를 찾아가려고 했지만 추위가 무서워서 울고 앉아 시를 만든다. 화낭의 도실을 방문해 돌아가는 도중에 한 적이 있다. 바람 소리가 귀에 가득 찼을 때, 옷차림을 걸어 혼자 앉아 뛰어 돌아간다. 불행 제목 없음(제목 없음) 불행 이누흥(견흥) 송동년의 죽음을 애도 혼자 웃는다. 불행 하루카무라가 나를 찾아와, 장래, 도류와 함께 영은사에서 연말을 보내려고 했지만, 그 절은 나카스케가 체재하고 있는 곳이다.

 

사이쿄의 박용건이 연말에 선물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계(隱溪)의 시권으로 제한한다. 강릉의 유사가 돈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난 꾸러기. 즉사(소사) 김광수원사가 곡성과 칠원 2분 시중을 위협하고 정월성, 양길창, 한정당, 영녕군, 영흥군, 순흥군 우림을 마련해 풍귀를 베풀었지만, 이때 강평장이 주인의 오른쪽에 앉았다. 내관(金實)은 주인의 양자이지만 다른 한 명의 내관과 함께 양전의 선온을 받아 왔기 때문에 빈주가 잘라 마시고 날이 어두워져 자리를 파냈다. 그리고 술이 깎은 뒤 앉아 생각해보니 다양한 원로들 전원이 원국조정의 은명을 받은 분들이었다. 원사는 지정황제를 모시면서 자정원의 장관을 역임했고, 곡성은 원조정에서 누구나 가벼워 정동성의 숭중 중에 임명되어 칠원군도 칠원군도 월성은 원외승을 지냈고, 요시창은 왕부 사사관이 되었다. 영녕은 연경에 하정사에 가서 함림승지에 제수되어 순흥도 입욕하여 우승지에 제창받았고, 한한정당은 정동성 유학제거(學學) 그리고 나는 다행히 부대를 이어 원국의 과거에 급제해 공봉 봉중이 되었고 나중에 명국의 황제가 새롭게 출현하게 되었다. 아, 곡성은 나나하라와 같은 해에 태어나 올해가 199이지만, 강건하고 정민한 모습이 조금도 쇠퇴하지 않았다. 월성은 이분 시중보다 일세 연하로, 요시창은 3세 연하이며, 노일당은 5세 연하이며, 닝닝은 예승구이며, 다른 분들도 모두 6순에 가깝다. 내가 그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마석에 끼였지만, 그래도 연령이 55명인데, 이런 성대한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아무래도 행운이 아닐까. 이에 시의 수를 붙여서 시청하면서 이 영광을 스스로 자랑하는 곳이다.

 

불행 서울로 돌아온 밀성의 이분 박 선생님을 방문한다. 윤월 24일 광평시중이 다양한 야로를 초대해 흥국리저택에서 연회를 한 적에게도 참석해 늦게 돌아와서 높이 시전한다. 솔린(서쪽) 초대를 받는다. 정부서와 김정언의 2분 회장이 찾아왔다. 이들이 떠난 뒤 박정자 학대와 사문이유(李齥)가 다시 집에 왔다. 불행 귀법사의 물가에 세운다. 개성윤성을 방문하려고 하면서 느껴지는 점이 있다고 했다. 동정의 갑인연문생들이 연회를 준비했지만 형제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나와 한묘운에 말을 보내 참가하도록 초대했다. 그 자리에 가면 밀직한 정포는 정포가 먼저 와서 그 후 지문 아래 박효사가 다시 왔다. 이에 폭음을 하고는 밤이 되어 돌아왔지만, 이 날은 윤월 그 날이었다. 니시 미네에서 돌아 오는 길 박판서 밀양이 찾아온다. 삼가주상의 전하가 천동으로 이어지는 길일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병의 신하로서는 어떻게 도울 길이 없기 때문에, 단지 봉인이 축하한 것만을 진짜 수를 세웠다. 보은의 술을 잘라 받는다. 어제 雙淸安公이 나와 한류 巷을 초대하고 함께 마시면서 연구를 했지만, 내 아들의 종학도 雙淸亭上人如升. 날이 바닥 무렵에 모두 함께 영공의 저택을 방문했기 때문에 이것은 가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이 되어 집에 돌아왔다. 櫻桃花를 노래. 민 중립이 찾아온다. 연도를 기억하십시오. 감회(감동) 야나기 항이 나를 찾아 성북에 놀러 가려고 했지만, 몸이 고생하고 사양을 하고는 혼자 슬픈 생각이 들기 때문에 긴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송채의 이상이 집으로 돌아와 술집에 초대한다. 을사·기유·신카이 삼과의 제생이 나를 좌주라고 하면서 술과 음식을 갖추고 있었다. 이에 익재선생의 견자인 개성공을 초청해 같은 해 안대부와 정정당과 선군의 문생인 박정당과 일첨서를 초청했다. 그리고 이반주가 정은의 손자이기 때문에 조은의 동생도 초대를 받아 참가했고, 오간부의 민개성과 아내제의 권대부도 합석했다. 삼과의 동생은 연령순으로 단번에 모여 앉았다. 내관이 왕명을 받아 와서 미야나카의 술을 주셨으므로, 절을 마시면서 밤까지 자리가 이어졌다. 료칸에서 내가 이미 취했기 때문에, 자세하게 말해주지 않고, 대략 충효 이문자를 듣고 열심히 부탁했다. 다음날 오운에 가서 사은하고는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점이 있기 때문에 그 감정을 노래로 표현했다. 흰 연꽃에 가서 돌아와서 느낌이 있습니다. 현화사의 생공이 어머니를 보고 남원에 가면서 나를 찾아가 이별을 고하자 아침에 일어나 흰 구름을보고 지어. 김공립이 복직을 하고 어머니를 영예롭게 해 주려고 나에게 말을 받도록 부탁했는데, 내 말을 누가 들어 줄까. 이것에 시한수를 붙였다. 흰머리 廉侍中의 죽음을 애도 곡성의 상으로 사흘간 시공하는 것을 중단해 오늘까지 부끄러운 수를 세웠다. 도중에 세운 시기수를 추가하여 기록한다. 절간윤공이 청룡사에서 노닐다가 돌아와서는 瓠蘆에 순채를 넣어 건네주고 환환의 편지를 다시 전해주었다. 이것에 너무 기쁜 나머지 시의 수를 세웠다. 일찍 일어나 요통 유의 꼬리 소리 듣기 비가 내리기를 기뻐

 

혼자 앉아서 다시 시전한다. 이날 비가 내리니까 다시 잤다. 가을 구름 폐사 중 부인에게 만사 은 성상 탄일이다. 칠원부원군과 영문하광평군과 영산사 철원군을 선보였고, 요시창군권공과 재령군 강공군 한한(한공)과 상산군(상산군) 김공(김곤)과 청성군(청성군) 한공(한공) 및 내가 진문으로 나섰다. 내관 김실이 은사를 받아들여 안으로 들어갔지만 하례를 받지 않는다는 비지(비지)가 내려졌다. 이에 물러난 뒤 새롭게 지어진 궁전에 들어가 말려들면서 공사를 감독하는 다양한 관원을 위로해 돌아왔다. 불행 청성과 함께 동카군의 이광수를 방문한다. 이호연이 찾아온다. 후반의 녹색 막대기로 보리 섬을 받고 샤워 역사책을 읽은 후 구름을 부르다 짚 새벽 안개 맑은 바람 도당에서 칠원부원군과 영문 시모히라헤이와 나가산지 테츠하라 철원에 회의에 참석했다. 이때 강평장과 한상당, 성하성, 박릉산, 한청성과 내가 그 뒤에 모셔 들어갔다. 당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파냈지만 마침내 비가 내리자 팔구의 시를 세웠다. 즉사(소사) 노래(노래) 궤도(几坐) 출유(출동) 농지관리인 박규가 새쌀을 가져왔다. 밤비 자영 낮의 꿈 호우행(대우행) 같은 해(동년)의 주인성(주인성)을 볼 수 난 지 10년 만에 그가 갑자기 찾아왔기 때문에 너무 기쁜 나머지 중 한 명이었다. 어젯밤에 달빛이 가득한 가운데 풀벌레가 울고 대기에 무언가를 느끼고 한 마디를 얻고 나서는 새벽에 일어나 이를 보충하여 일수를 완성했다. 버드나무의 누군가로 술을 조금 마시고 원재가 세계를 하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곡이다. 가을날 공권 장례식에 내가 병으로 결국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참하게 느껴진 나머지 또 다른 수를 세웠다.

 

비중(비중) 柳巷에 증정한다. 비 속에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싶어도 술이 없기 때문에 자조하고 시를 만든다. 야장(야장) 동경황황산을 부른다. 서리(서쪽) 우제 구름 안개 (구름 안개) 일을 기록한다. 蔡翁主의 죽음을 애도 야나기 현이 아카다의 별장에서 노닐하면서 연꽃을 감상하려고 초대했지만 병이 들어가 사양이다. 고통을 풀어 보자. 자영 아침 일찍 일어나 농업을 추천한다. 중추절 하루 전날 야나기 항에 증정한다. 첫 서리가 내립니다. 향교(鄕校) 호강의 가을 서쪽이 아카다의 별장에 놀러 가자고 부르는데 매우 기쁘고 똑바로 할 수 있다. 아카다 별장에 있는 요시창의 간청 위에 연꽃과 대화를 나눈다. 뒤로 다시 튀는 하치구치 비에 맞서 회포를 쓴다. 즉사(소사) 빈자 에 곡성 부인 권씨의 장례에 비를 태워 참석해 보니 너무 지쳤다. 다음날 돌아오는 동안 잠시 휴식하면서 점심을 먹고 성내로 들어가자 태양이 이미 니시야마에 지고 있었다. 화창한 날 즉사(소사) 술회(술회) 안학사가 성묘하게 간다. 목은 시고 33권 시 중추에는 첫 밤에는 흐리고, 중야에는 달이 낮과 낮처럼 밝았다. 월견에 나오지 못한 것을 후회한 무엇의 도움이 될까. 별로 없고 내년도 기다리기로 했다. 야나기 료 선생님이 雙淸安公에 함께 가서 밤에 토론을 하려고 나를 불렀지만, 내가 눈병을 위해서 사양해서는 시 일수를 세웠다. 탄슈의 새로운 누각에 대한 기문을 세우고 나서 일수 썼다. 외출을 시도하면서 야나기 대언의 부인 모토 씨에 대한 만사 기쁨을 기록한다. 경상도의 안렴사에 나가는 여총호의 시권에 제목을 붙인다. 야나기 현이 비문을 쓰려고 떠난 것에, 나는 몸이 단단하고 따라잡지 않았다. 이에 슬픈 생각이 들어서 하치구의 시를 지어 읊었다.

 

떡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 요시마사군을 모시고 쫓아 칠원시중을 배신한다. 조심스럽게 들으면 다음달에 오오타마가 난징으로 향한다고 했지만, 나는 맡은 관직이 없어서 도난하는 반열에 끼일 수 없기 때문에 슬픈 생각이 들어서 한 명의 수를 세웠다. 임동영이 농원의 각종 야채를 보내줬으니 우스카이에서 절구를 만든다. 옴[穥] 최강에 머물고 있는 승생승통을 보내고, 환상에 서둘러 써서 불어. 야나기 밀직이 경사로 떠났지만, 나는 마침내 몸이 고단해 교외로 나아가 전송을 할 수 없었던 채로 단지 몇 개만 지었다. 서쪽의 자제인 판서가 술과 음식을 줬지만 공이 나를 참석하라고 부르니 열매를 먹고 마신 뒤로 돌아왔다. 느꼈다. 우리 서림에 봉정한다. 느껴지는 점이 있기 때문에 술회(술회) 아이들이 서리(서쪽)의 밤을 주워 왔기 때문에, 시의 수를 세웠다. 삼가주상의 전하가 동교외를 향해 성안하는 날을 만났는데, 나는 병에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시의 수를 세웠다. 다병 삼가상상해 보건대학 교외에 설치한 행궁의 하늘이 맑고 열렸기 때문에 성상이 마음 속에서 즐기는 가운데 무신들이 환희용약하고 하나의 기례를 바치고 생각한다고 생각되었다. 이것에 내가 병중에 시한수를 붙여서 읊었다. 그 후, 잠시 후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은 가운데, 활발한 빗방울이 몇 점 떨어지기 때문에, 내가 매우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마쓰야마로가는 길에 안죽성을 만난다. 소나무 아래에서 굶주린다. 광평영문하와 권길창, 정월성, 강평장, 이광양, 김동산과 밀직밀림(趙琳)을 되돌아보고 시전한다.

 

쇠약한 삶 주동년에 바친다. 판사 辛云吉의 죽음을 애도한다. 도호쿠면 준몬지 나가코온이 연어를 보내준 것에 답한다. 김좌윤이 함창에서 왔기 때문에 기꺼이 기록한다. 같은 해 이몽동이 찾아온다. 이카와의 전답을 빼앗으려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소(가소) 보법사에 가서 원재의 49일에 참석한다. 종학 부령이 송경에서 술과 음식을 쌓아와 먹어준다. 자은의 도실과 쌍둥이의 안공과 야나기의 한공이 남교외에서 나를 전별해 주었다. 동강야음 날이 밝게 배에 올랐다. 인녕 나루에게 배를 대고는 조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바람이 불고 하루를 보냈다. 9일 정오가 되었을 무렵에 순풍을 타고 배를 떠다니고 꼬치에 도착했지만 그 해는 아직 기울지 않았다. 독포(禿浦) 이와시타(巖下)에서 묵는다. 다음날 반연에서 묵고 또 다음날에는 도미원에서 묵었기 때문에 물이 얕고 배가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정당의 별장에서 묵는다. 독포에서 달빛을 타고 히로쓰까지 와서 묵는다. 다케우라에 와 배에서 내린 후 난징 동무라 왕심리 민가에 묵었다. 그 후 다음날 행궁에 가서 납치하고 돌아가는 길에 뛰었다. 이날은 이었다. 반밀직이 선양을 가져와 하사했기 때문에 다음날 오오우치에 가서 사과하고 돌아온다. 이날 우영건과 박용건이 술을 가져왔다. 부창이 서울로 돌아온다. 闕庭에 가서 안부를 여러 번 돌아온다. 화산군을 찾아가 만나지 않고 돌아온다. 불행 솔린(서쪽)이 숙직에 가서 집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잡흥(雜興)

 

비가 멈추고 날이 맑고 이누코 렌을 감상하고 싶은 흥분이 일어나기 때문에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때문에 연꽃을 ​​보러 가자 서서 초대를 다시 받은 것은 비가 방해하는 바람에 유감스럽게 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이 감각을 한 장의 시로 지어 주창은 기록해 증정했다. 날이 끝난 것이 기쁘다. 어제 희안과 코야스가 방문했다. 한 청성이 安雙淸와 나를 초대해 호카지 연못에서 연꽃을 감상했다. 소나무 사이에 막막을 설치해, 사람마다 연꽃잎 한 봉지씩 가져가기 전에 두고는 닛산으로 하고, 또 벽통음을 하기도 했다. 이날 우리에게 순종한 사람은 쌍청의 자제인 제학공과 대사, 청성의 세 번째 아들인 왕부, 그리고 내 아이의 세 사람과 제 문생의 허판사였다. 설제학과 이판서가 중국에 진공 기여하는 표문을 상담한다. 정좌(인좌) 남정당의 백일슌에 가려고 하면 비가 내리는 바람에 그만둔다. 날이 보기 참새 노경 원정 니시마츠가 야채를 보낸다. 불행 중도의 유사가 젓가락의 2 개의 복합 시설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주 목사가 소라젓가락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용공(정령공)에게 보내 보낸다. 비중(비중) 버드나무에게 보낸다. 연꽃을 ​​부른다. 하늘이 밝아진다. 즉사(소사) 이호연이 와서 말하는 것을 곽충수판서가 죽어 이미 영구가 장지로 떠났다는 것에 깜짝 외쳐 짧은 시를 지어 애도했다. 새로운 뉴스를 듣고 비가 멈춘 후 야나기 항을 생각했다. 張子溫霊空에 불어. 동북면을 진압하러 가는 이판삼사사를 보내 유한이 술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용건에게 부처를 보낸다. 백일홍을 노래한다. 은 익재시 중(사무라이)의 기신(기능)이다. 후손들이 청교동 법정사에서 재물을 보내고 명복을 빌렸기 때문에 내가 아프고 가서 예의를 도운 뒤로 돌아와 이날의 느낌을 시한 수로 썼다.

 

동북면에 경보가 울렸다는 소식을 듣고 정부서도 병이 들고 나도 병이 들어서 양가의 왕래가 끊어진 뒤 낡았다. 그런데 이호연이 나를 찾아와서는 내일첨서가 동북면 원수부에 가기 위해 길을 떠나겠다고 했다. 이제 제가 교외로 나가서 옮기려고 했는데 말을 타기 힘들기 때문에 시의 수만큼 앉아서 세우고 그가 돌아오면 노래를 부르며 위로하기로 했습니다. 효운 선생님이 후토쿠부 판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쁜 마음에 하례하려고 달려가는 도중에 이 시를 만들어서는 잇달아 입에 뛰어 주려고 했지만, 방금 외출중이니까 그냥 집에 돌아가서는 이것을 기록해. 이 이상을 축하 문생윤 대언을 축하 어느 평리에 부처를 보낸다. 아침밥을 먹은 후 떠있는 구름 자소(자소) 에 수수 농장에서 노닐을 보려고 남대문 동쪽 모퉁이에서 종학을 기다렸다가 주변 산들을 바라보며 한 걸음 내디뎠다. 진봉산과 물 하나를 사이에 둔 언덕에 앉아 종학을 다시 기다리면서 불각사를 바라보며 같은 해의 신차지(판지)의 고서(전기)를 바라보면서 전장(田莊)에서 혼자 웃는다. 종학이 학질에 걸렸지만 이날 출발해야 ​​했으니 서둘러 돌아왔다. 길의 중간에 지어진 하나의 수 니시바닷길(西海道)의 이미생(廉使)이 참새 고기를 보내 온 것에 감사하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강릉도의 廉使西九思廊(사린)의 시권(시卷)에 제외한다. 그의 어머니가 강릉부에 있었다. 내일중 가을절에 달구경을 해야겠지만 누가 나를 부르는지 모르기 때문에 몇몇 시의 시를 주자. 서쪽 옆의 요시창군을 모시고 맹정정에 가서 병문안을 하고 돌아오는 길로 했다. 효운 선생님이 키타히로 경원의 향기로운 법석에 가서 내가 찾아가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채 한 번을 세웠다.

 

7일 중간에 현령문군이 내방한다. 맹유(孟㽥)가 개경으로 돌아온다. 마츠켄 시중(사무라이)에 보내 은혜에 사례했다. 省郞제제(제형)라고 부른다. 절구를 권에 단련하고 몸이 따라오는 것을 늦춘다. 16일 미츠키가 주식을 보냅니다. 아카기의 유선 판사가 동아와 우엉을 보내 왔기 때문에 웃음 개를 지어 감사하고 싶다. 불행 琇峯이 찾아왔다. 18일에 자영 미츠라가 부쿠미와 병술을 보낸다. 자해 20일에 눈앞의 일을 소재로 하여 시를 만든다. 맹인이 오고 나서 다시 간다. 윤가모의 부인 권씨가 쌀과 오이 정글을 보내준다. 김상장이 온다. 청원을 허락받지 않고 혼자 시전한다. 안심(안심) 28일에 욕설 29일에 송처로 보낸다. 경오년 에 아카기의 유판사가 술을 마신 병에 달랏과 부치를 한 곳에 넣고 여기에 다시 물고기 한 마리를 보낸다. 권총이 와서 안녕을 말한다. 이형(姨兄)인 도쿠하라군(김창) 김창(김창)이 족손(족손) 총지(呧持)의 승려를 대동해 술과 음식을 가져와 나를 먹어준다. 사람을 기다려도 오지 않기 때문에 집 사람이 온다. 입춘 전날에 타치하루(타치하루) 아키코(첩자) 송홍에게 부른다. 불행 아카기의 유판사가 약밥을 보내 왔기 때문에 정오가 될 무렵에 용철이 약밥을 보낸다. 옆 노인인 이봉서와 박중석, 김석(김석), 김희(김현), 이우준(이유중), 송승효(孫叔畦)가 윈 놀이를 하기 위해 옆에 앉아 구경한다. 말을 타고 사냥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 옴병에 걸려 마음이 잡히지 않기 때문에 며칠 동안 시를 주창할 수 없다. 문생인 요시주서가 집에서 보이는 순서를 기다리고 있지만, 늙어도 젊어도 가족을 데리고 선주로 돌아가는 적에게 나를 찾아 이별을 말하고 하룻밤을 묵는다. 23일에 마츠켄에 양조한다.

 

8일에 집 사람이 왔다. 이것은 남쪽으로 나가는 저를 보내기 위하여 이었다. 집을 데리고 석벽에서 노니는 안에 옆집 박씨가 물을 건너는 말에서 멀리 꼬리표를 잃었다. 니시무라의 금룡 내관이 술과 음식을 가지고 찾아온다. 중동을 서둘러 보내 내 의지를 담은 이 시를 마츠켄에 올리게 했지만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회포를 깨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환상이 보낸 편지를 받고는 약간의 시로 대답해 올린다. 함창음 경오년 함창에 도착했다. 압송관인 근사낭 주인기술이 돌아오는 쪽으로 이분 시중에 단련했다. 출척사(黜陟使) 영공에 융기한다. 중9일 후일에 청주에 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절절한 수를 읊고 종학의 첨서에 제가 평안임을 알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 사람이 끝나는 거기에 갈 수 없었다. 백손 맹인이 나를 따라 남쪽으로 왔지만, 그의 언니가 아프고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집은 뉴스를 전해왔다. 이에 내가 맹균에게 권하는 것을 “형제는 천륜이지만 한번 세상을 떠나면 다시 만날 길이 없으니 너는 서둘러 가보도록 하라. 할머니가 아직 오지 않는 걸 걱정할 뿐이었다. 같은 해 쿄야마부의 금판서에 바친다. 희제(戲題) 河光祖 (서광 조) 출척사 영공으로 단련한다. 출척사로 부른다. 권신재(權愼齋)로 날린다. 희제(戲題) 불행 기사(기사) 까마귀에 불어. 송처로 보낸다.

 

삼봉에 불다. 도당에 오른다. 불행 내 우정 야나기 치카와군에게 불다. 李崇 (이사)의 승지 (승지)에 불다. 충주목(청주목)의 황동갑(黃同甲)에 불었다. 魯興의 권지군에 두 사람 만이다. 칠석일에, 주인의 대요사가 식량을 입어 주는데 노부가 취해 누워 절구를 시전하고, 다음날에 기록해 올렸다. 이날 감군 정공이 술을 가지고 찾아왔기 때문에 다음날 시를 지어 감사했다. 감군공이 보리지마와 참깨 5말을 보낸다. 조잔을 겸임하고 있는 아마야마의 신감무로 부른다. 계좌(久坐) 尙州 교수관 이 여신이 방문했지만 그는 나의 문생이다. 매미 소리 듣기 일찍 일어나 소나무를 보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 안동의 권신재(權愼齋)가 글을 보내고 차가운 시를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다시 그 운을 써서 고조시킨다. 큰우탄(대우탄) 이백의 시를 읽고 이승길 중석이 새로 빌린 술을 가져와 환대한 게 두 번 되기에 단가를 지어 아오라지 이에 대답하려고 했다. 우제 음소(음조) 기쁜 일을 기록한다. 해주의 족장에게 받아들여 불다. 괴로운 감정을 풀어라. 김상단이 술을 가지고 찾아와서는 밤에 완두콩 등을 먹어주었다. 에슈 유학 교수관이 번육을 보인다. 7일에 黜陟使令公가 덕통을 지나간다는 말을 들었지만, 병 때문에 직접 나와 만날 수 없고, 대신 문장으로 써 불상으로 올렸다. 잠시 사무라이가 개천사로 돌아오자 인사를 하기 위해 붓을 달리고 환시쿠쿠사에게 단련했다. 백련회 자리가 파낸 뒤 박영공을 머물러 중추절을 함께 지내고 한밤중이 지나서 자고 말았다. 그런데 돈이 무너지기 전에 공이 떠났는데 나는 한가운데에 자고 떨어지고 그 사실을 몰랐다. 이에 새벽에 일어나 시전한다.

 

양산대선사가 송이버섯을 보냈기 때문에 감사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장서로 부른다.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송겐에게 보내 준다. 포운(孃隱)으로 자아낸다. 금주음(금주음) 홍무임신년(1392, 공양왕 4) 여름 에 토코이 사순승을 보내 하교되는 것을 “두 명의 아들은 사실과 다른 것을 말한 죄에 저촉했기 때문에, 지금도 관례대로 사직할 것인가.” 했다. 이에 신색이 기쁜 마음으로 토지를 굴려 춤추면서 사은해는 곧 출행했지만, 보현원에 이르렀을 때 비가 내리면서 조금 머물렀다. 임진에 도착해 금경련판사의 농장에 묵는다. 15일에 고슈 유영건 농장에 묵는다. 16일에 공창 나루를 건너다. 이날 광주 마을에 도착했기 때문에 여기는 내 서번트와 메이드가 거주하는 곳이다. 여기서 며칠 동안 머물면서 단가를 지어 노래했다. 우제 현 판서에 바친다. 같은 해의 강판사의 벽에 사용한다. 그가 나에게 진찰을 하고 싶다고 묻는 것에 장난을 치게 이렇게 세웠다. 강동년, 인채 선생님에게 양성한다. 우울한 시골집에 제목. 제형(형제) 난징 윤에 불어. 박동지(朴惇之)가 물고기를 보내준 것에 대해 사례하며 아울러 소회를 피한다. 집 북쪽의 작은 동야마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는 것보다. 송겐에게 보내 준다. 현판서가 메기를 보낸 것에 사례하면서 느껴지는 점이 있으므로 시세수를 만든다. 관령산의 옥수수의 안수좌가 송아지와 석고를 보내 온다. 즉사(소사) 관악산 신방사의 주거는 무급한 도반이다. 그가 이끼에서 돌아와 이 절 사이에 머물러 노숙 누구와 함께 먹는 것을 가지고 나를 찾아 먹어 주었다.

 

숙진진사에게 서둘러 글을 보내 서울로 들어가 일을 주관시킨다. 의지할 곳 없이 영락한 나의 돌봐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을 스스로 웃으면서 일수를 붙였다. 중현대부에서 안산을 맡고 있는 정사운이 백미의 열마와 건어의 열말리와 술 2병을 보내면서 남계정사의 의뢰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정안산은 경기지방에 꼭 부임하고 남군은 양광도의 계정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서로 뉴스를 통한 것일까.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분명했기 때문에 장난스러워 단율을 세웠다. 날이 맑아지는 것을 기뻐하며 이끼를 위로한다. 즉사의 시대를 세고 직설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이것은 학언이 아니다. 경치를 만지면서 느낌을 토로한다. 현판서를 통해 대초로 지붕을 덮은 새 집을 구한다. 남재가 순채와 술과 주지를 보내온다. 광주 목사 (광주 목사) 최회를 부른다. 어제, 안양의 도생승통이 술과 음식을 가져와 나를 위로했지만, 오늘 아침은 또 종이를 보내왔기 때문에, 내가 시를 세워 사례했다. 사방에 구름이 없는 것을 보고는 느낌이 되기로 한다. 잠시 뒤에 흰 구름이 조각 조각의 하늘을 가득 덮는 것에 다시 한번 숫자를 붙여서 읊는다. 양성의 감무인 고의 누가 백미의 오언과 술 두 편을 보내왔다. 그는 한식일에 한산에 성묘를 가서 돌아오는 적에게 사평원까지 나를 호송한 자다. 신정 얼마 전에 같은 해의 인채공을 방문했더니 그가 말하는 것을 “내 아들인 청곡 승려가 조만간 북쪽으로 올라가면 편지를 보내고 알려 왔기 때문에 공도 반드시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그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다행히도 그가 보낸 료나 병을 하나의 선물로 받았습니다.

 

판조계사인 다케시게 진공이 내원에서 물러나 주석을 하고 있는 억정사로 돌아가는 것에 이와쿠시에 묵으면서 )를 위로해 주었지만, 이때 마침내 나의 새로운 집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태양의 그림자가 옮겨질 때까지 함께 앉아 있었다. 죽암을 초대해 변변한 음식도 대접하고 있던 차에 박판서와 강판사와 현 판서가 끝나자 함께 담소하고 마음껏 즐겨 자리를 파았다. 이것에 이전 시의 운을 써서 시를 만든다. 손님이 떠난 뒤 혼자 앉아 강변의 경치를 음미하면서 차를 떠날 수 없었던 차에 권홍주가 마침내 방문했기 때문에 또 술을 듣고 조금 마신다. 다음날 죽암이 떠나는 적에게 시간에 맞추어 보낼 수 없었다. 박판서와 함께 권홍주의 일시 주거에 가서 아침밥을 먹었다. 더위가 심해서 강에 배를 띄웠지만 부인의 배가 다시 와서 조금 술을 마신 뒤 바닥에 헤어졌다. 이날 현판서와 용산의 신판서도 술과 음식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는 권홍주를 전별하기 위해서였다. 다음날 몸이 단단히 누워 작은 소리로 튀어 올라간다. 기탄의 나가하시에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판서, 박기원을 전송한다. 여흥음(驪興吟) 강동년과 현 인접장으로 분한다. 14일 군수가 방문한 것을 감사한다. 16일 문생인 서양근이 시원한 오자놉장을 보내왔기 때문에 이 시를 세워 전날 한 명의 승통을 데려온 것까지 함께 감사했다. 아흥군 모리가 배를 당겨 와서는 노부에게 배 놀이를 같이 하려고 초대했지만, 강의 복판에 이르고 사방을 되돌아 보면 실로 즐길 수 있는 장소였다. 흥에 와서 흐름을 거슬러 올라 노자암(鸕鶿岩)까지 가서 잠시 머물렀지만, 또 배를 돌려 흐름을 타고 내려오기 때문에 정말 통쾌했다. 진국인의 술의 맛과 신선한 생선회, 그리고 혼자 불어 혼자 불는 연주기는 실로 뒤로까지 풍정이 남았지만, 저녁 늦게 누데 위로 돌아오자 마치 신선한 놀이를 하고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다음날 붓을 잡고 이것을 기록했다.

 

真宗詐欺 (진소사 기) 승련사기 사이쿄의 풍월원 기문 남원부에 새롭게 설치한 용용재의 기문 미나미야기(미나미야기) 遁村記 안동의 약원(藥院)에 관한 질문 목은 문고 제2권 기 물고기 료카야마 지조지(중수기) 香山(윤필 암기) 금강산(金剛山) 윤필계기 침류 정기(베개류 정기) 萱庭記 텐포야마 히로지사 수조기 고세키야마 흥성사의 전장법회(轉藏法會) 토치 히라 현 야스 야마 다케 지스케의 중영기 鯪江縣神勒寺의 保済濟舍利石鐘 양홍기(양채기) 목은 문고 제3권 기 양촌기(양촌기) 규홍기(아오켄기) 국간기(국화기) 양주 통도사의 석가 여래의 배리에 대해서 조씨 임정기 양진재기(양진재기) 롯우도기 윤필 국기 자비령 라한당기 장성현 시라이와지 시라카와 가야마 안심사의 둔리석 종에 관한 수수께끼 스미센 켄기 탄슈 공관의 새로운 누각에 관한 고문 목은 문고 제4권 기 도운재기 (도자기) 朴子虛의 정재(貞齋)에 관한 기사 세이이야마 문 수사 문장 영모정기 수원부의 객배 지정(이케테이)에의 기고 준창객관의 새로운 누각에 대한 고문 마츠즈키 겐키(마츠즈키 겐키) 환상 요 헤이 히라 사토 야마의 윤필 국화에 관한 질문 지평현 미치야마 류몬지의 대장전에 기고 목은 문고 제5권 기 송풍헌기(송풍헌기) 청향정기(淸香亭記) 저정기(樗亭記) 석서정기(石犀亭記) 축은 재기 포운재기 寶蓋山 石臺菴 지장전의 기문 거옥 쇠고기 우시야마 미이와 요지의 중수기

 

소재기(소재기) 無隱菴記 육익정기(六益亭記) 송월당기(송월당기) 목은 문고 제6권 기 헤이신도기 부후당기(부효당기) 각암기(覺菴記) 설산기(설산기) 고다이산 상원사의 승당에 관한 기문 報法詐欺 (보법사 기) 고암기(古巖記) 고암기(기스기) 청주 용자산 송천사에 있는 懶翁鎮堂 기념비 적암기(寂菴記) 중방의 새로 지어진 공해에 관한 기문 미나미 요부 망카이 아키라의 기문 청주목(청주목) 관용재 기문 운헌기(운헌기) 엄곡기(시마야기) 목은 문고 제7권 서 익재선생 난고 「유키타니 시짚」서문 《근사 재일고(近思齋一藁)》 후서 야나기 사쿠시의 시비에 기증한 서문 양광도 안숭사에 가는 한사무라이사를 보낸 글 경상도 안숭사(腶尙道按廉使)에게 부임하는 송도관을 보낸 글 강릉도 안렴사 김선생을 보낸 시의 서문 어머니를 찾아가는 박중서를 보낸 글 서도사가 사신에 와서 돌아왔을 때 보낸 글 금 판사의 시위 뒤에 쓴 문장 《전등록(傳燈錄)》 서문 목은 문고 제8권 서 사이의 거동(이안) 문집서문 默軒선생문집서문 타케케이 야스 삼형제의 등과를 축하한 시의 서문 휴상인에게 준 문장 송고 학교에 준 문장 십운시의 서문 양광도 양광도 안창사로 출발하는 안사무사를 보낸 시의 서문 은계림 상인을 보내면서 지은 문장 쿠리테이 선생님의 일초에 붙인 서문 전 상인에게 준 문장 선상인을 제출한 게시물 현상인을 떠나 보낸 글 절전 상인을 보낸 문장 월창(월창)을 보낸 기사 목은 문고 9권 서 경선도 안사에 부임하는 이지평을 보낸 시의 서문

 

《급암시집(及菴詩集)》서문 《농상 집요(농계 수요)》 후서 「나카순도집」서문 1구 상인에게 준 글 환상인에게 준 포스트 가흥 신륵지에 있는 패패의 진당을 위해 지어진 시 보오존자의 어련 후에 쓴 문장 《선집집》서문 《주관 6익(서관 6익)》서문 김경숙(김경숙) 비서(상서)에 쓴 시소(시서) 원장의 연회에서 창화한 시의 서문 구 孰寶使가 돌아왔을 때 보낸 시의 서문 사방을 유람에 출발하는 미네 상인을 보낸 문장 목은 문고 제10권 눈 직설 3편(직환삼편) 세 아들의 이름에 대한 설 한씨의 네 아들의 이름에 대한 설 백공에 대한 설 자복 (자복)에 대한 설 가명에 대한 설 자인자에 대한 설 중단에 대한 설 효주의 설 치현(之顯)의 설 맹양(효양)의 설 고연에 대한 설을 세워 정희주에게 이별 선물로 준다. 백중에 대한 설을 세워 이단원에게 이별 선물로 준다. 장님에 대한 설 순중에 대한 설 평원에 대한 설 중영에 대한 설 천봉에 대한 설 설소의 눈 경춘에 대한 설 이씨가의 세 아들의 이름에 대한 설 목은 문고 제11권 사대표전(사대표모) 홍건적(평건적)을 평정한 후 충정(충정)을 진행한 표문 사과한 표문 이름 개정을 요청한 표문 절일을 축하한 표문 황후의 책봉을 축하한 표문 황태자의 치아키절을 축하한 국문 술과 고이를 감사한 표문 복위를 감사한 표문 진정표 황태자의 개선을 축하한 전문(기문) 관복을 들은 표문 진정표 왕대비의 진정표 虡號을 낮출 것을 요구한 표문 왕위 계승의 허락을 요구한 표문 다위에게 임명해 주신 것을 사과한 표문

 

등극을 축하한 표문 사과한 표문 거미의 평정을 축하한 표문 자매 입학을 들은 표문 사라를 하사한 것에 대해 사과한 표문 왼쪽 대언을 사직한 전문(국문) 판문하를 사직한 전문 찬성사(潘卜海)에 내린 교서(교서) 3명의 원수에게 죄를 범한 교서 수명 지배(수명 지배) 은퇴를 요청한 기사 목은 문고 제12권 장 김사하늘의 진영에 제목한 장 관물재에 한정 냉 요시타니 준경 4자로 한정 짱 판삼사사 최공의 화상(畫像)에 한정 식목수(숨목수)에 지어진 찬 오니 야에 주신 서지에 한정 짱 간증 (사무라이 중) 정공 (정공)의 이미지 (반상)에 한정 짱 황금 난초 그림에 한정된 차가운 붓에 한정 짱 무능한 거사에게 준 장 잠자리(잠깐) 야나무 사무라이에 지어진 송재명(성세명) 김경지(김경지)에 세운 새벽 김경처에 세운 치당명 삼인(미츠키 명) 자경면(자유잠) 변 (후리) 사변(辭辨) 회신(답변) 목은 문고 제13권 서후 동상이 눈동자의 대문자를 보충하여 써준 두루마리 뒤에 썼다. 이준부의 시권 뒤에 쓰여진 기사 도운(陶隱)의 시초 뒤에 쓴다. 금남 우수의 병기 후에 사용한다. 고연이라는 글을 해설한 글 뒤에 제외한다. 汕若財 학음 후에 쓴다. 리도 노래 뒤에 쓴다. 발 나흥 유를 축하한 시의 跋文 황벽(黃蘗)의 어록에 쓰여진 문장 나카타마의 환원시권에 붙인 발문 암곡 등 많은 선생님이 홍진사를 보낸 시권 발문 급암의 시집에 붙인 발문 만월처의 인공음에 적는다. 나연(懶翁)의 세가 뒤에 쓴다. 호법론(호법론) 뒤에 쓴다. 축제 조은(樵隱) 선생님 제문 경재상 형제가 아버지 사무라이 사다키 공을 제사장에 보냈을 때 대신 지어진 제단

 

최사무라이가 선고를 제사장에 보냈을 때 대신 지어진 제단 목은 문고 제14권 비명 광통보제 선사의 비명 서천 서서박타 존자(제납 박부존자)의 부도명 보동 존자시 포황의 ​​탑명(탑명) 목은 문고 제15권 비명 고려국증 성성절절 동덕보 조익찬신 전주 이씨가 아스카에게 거주지를 옮긴 후 분묘에 관한 기록 아리모토 봉의대부 정동행 중서성 좌우사숭중 중 고려국사문문공(정은공) 고려국 충성수의동덕논보리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곡성부원군 증언충경공 고려국 大匡 완산군 시 諡文眞 崔公의 묘지명 한문경건의 묘지명 목은 문고 제16권 비명 중대경 청성군시 諡平凡公 한공의 묘지명 계림부원군 문충리공의 묘지명 히코양군 부인 김씨의 묘지명 김승부(김순부) 부모의 묘표(묘표) 중대경현 현복군 권공의 묘지명 목은 문고 17권 비명 쿠리테이 선생 윤분정공의 묘지명 철성부원군 이문정공의 묘지명 마츠도 선생님의 김공의 묘지명 가이헤이군 忠凡(윤공)의 묘지명

 

목은 문고 제18권 비명 충원절의 충화절 의호화 공신 중대경 서령군(서녕군) 시 문경이공의 묘지명 아리모토 자선대부 태상연의원사 파평군윤공의 묘지명 목은 문고 제19권 비명 여흥군 부인 민씨의 묘지명 계림 부윤시 문경공 안 선생님의 묘지명 판서 박공의 묘지명 가와카와군文貞(正正)의 묘지명 당성부원군 홍강경건의 묘지명 윤군의 어머니인 최부인의 묘지명 목은 문고 제20권 전 송씨전(송씨전) 吳仝傳 박씨전(朴氏傳) 草溪 정현숙의 전기 崔氏傳 백씨전(시라씨) 가전(가전) 정씨의 가전(가문) 목은 집 부록 서 마키하카시 정선 서문 기 문서서원에 대한 기문 [정성부원군 이항복] 목은 집 발문 발 牧隱集 (跋文) [李德洙]

 

반응형